Page 57 - 2025년9월 라이온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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식품이자 방부제·살균제인 식초 서 실제 약으로 처방하기도 했다.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
발효의 끝판왕,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식품 저장법, 살 륙을 발견하던 대항해 시대의 선원들은 식초에 절인 양배추
균·소독 효과, 동서양 모두 사랑하는 조미료, 다이어트 음 로 건강을 지키며 수개월 혹은 수년에 이르는 바다에서의
료…. 서로 관련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전혀 상관없어 보이기 생활과 무더위를 견뎌냈다. 고대에는 식초를 단순히 맛을
도 하는 이 수식어들은 모두 식초를 설명하는 말이다. 1만 내는 조미료로 사용하는 것보다 약용으로 더 널리 이용하기
년 전부터 인류의 건강과 생활의 지혜에 기여를 많이 해온 도 했다. 로마제국 시대에는 클레오파트라를 비롯한 많은
식초는 최근 피로 해소 효능이 부각되면서 남녀노소 모두에 귀족이 건강과 미용을 위해 식초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
게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. 진다.
식초의 1차적 효능은 신맛을 통해 식욕을 돋워준다는 것이 동양에서는 중국이 3000년 전부터 쌀식초를 만들었다고 전
다. 식초를 마시면 입안에 곧바로 침이 고이는데, 침이야말 해지며, 중국 북위 시대(386~534년)의 농서인 <제민요술>
로 건강의 척도이자 최고 소화제. 따라서 소화력이 떨어지 에 식초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. 우리나라에서는 언제
고 무기력해지는 무더운 여름철엔 더욱 챙겨 먹어야 할 식 부터 식초를 사용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, 이수광의 <지
품이다. 또 강력한 방부와 살균 효능도 주목할 만하다. 식중 봉유설>에서 “초를 다른 말로 쓴 술이라 한다”는 기록이 있
독균은 약산성과 알칼리성에서만 살 수 있는데 식초의 초산 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서양과 마찬가지로 주류의 발달과 함
은 강한 산성이라 식중독균이 살 수 없는 것이다. 께 이어져온 것으로 추측한다. <향약구급방>에는 “약방에서
신맛이라 당연히 산성 식품인 것 같지만 섭취 후 몸 안에서 도 식초를 다양하게 사용했다”고 기술돼 있어 식초가 약으
알칼리성으로 바뀌는 식초는 육류를 많이 섭취해 산성화된 로 많이 쓰였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, ‘건강을 지키려면 소금
현대인의 몸 밸런스를 균형 있게 잡아주고 신진대사를 원활 은 적게 먹고 식초는 많이 먹어라’는 뜻의 ‘소염다초’라는 용
하게 만든다. 식초에는 초산과 구연산, 사과산 등 유기산이 어가 등장한다.
풍부하게 함유돼 피곤할 때 먹으면 독소를 배출하는 데 도 <증보산림경제>에는 “초는 장(醬)의 다음으로 맛을 돋워주
움이 된다. 또 활성산소의 발생을 억제해 암 세포가 생기는 는 바가 많아서 가정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”라고 기
것을 예방하기도 한다.
이 밖에도 각종 생활습관병을 예방하며, 몸속 노폐물을 잘
배설할 수 있도록 도와줘 변비에 효능이 있고, 나트륨을 배
출하게 해 혈압을 낮춰 고혈압을 예방하는 데에도 좋다. 특
히 천연식초에는 비타민 C가 풍부해 피부 재생력을 높이며,
식초를 꾸준히 먹으면 체내에 지방이 쌓이는 것을 예방해주
기 때문에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.
동서양 어디서나 인정받은 식초의 효능
이 같은 식초는 이미 2500년 전부터 그 효능을 인정받아 널
리 활용해왔다. 히포크라테스는 통증 완화나 세균 염증을
치료하기 위해 식초와 벌꿀을 섞어 만든 약품인 옥시멜
(oxymel)을 활용했고, 19세기 말경에는 프랑스와 영국 등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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